김범수 회장 15조
이재용 부회장 13조
어차피 조단위의 부자들에게 1위~2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기존의 제조업기반으로 일가를 이루고,
창업1세대가 후손에게 상속증여한 경우가 아닌,
본인의 힘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다는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 제조업기반의 회사들의 성장속도가 예전보다 느리다는 것.
제대로된 플랫폼을 가진 회사가 모든 것을 독식해 나갈수 있다는 것을
카카오를 보고 알수 있다.
삼성SDS를 다니며,
부업으로 한양대앞에서 PC방 사장을 하던 그가,
카카오를 창업한지 불과 약 10년정도만에
한국 최고부자라니...
한게임을 창업하고,
네이버와 합병시키면서,
적자만 봐오던 네이버를 한게임 수익으로 충당시켜줬고,
결국 모든 지분을 네이버에 넘기고 자연인이된다.
지분 넘기는 대가로 많은 돈을 벌었으나,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미국에 가 있을때,
아이폰 출시를 보면서
모바일 메신저 창업을 결심하게 되고,
실행에 옮기게 된다.
알고보니, 카카오 메신저 사업모델은 세계최초였다.
중국 위챗, 라인메신저, 페이스북의 채팅앱들도 카카오를 보고 따라한 것이었다.
기존 통신사 문자메세지는 글자제한도 있고
건건마다 사용자들의 비용이 들었는데,
카카오톡은 무제한 공짜였다.
하지만 그는 1달에 10억씩 카카오톡 서버유지비용으로 꼴아박고 있었고,
플랫폼에 사람들을 모으기만 하면 무조건 돈이 된다는 믿음으로 버텼다.
결국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고,
감당할수 있는 한계가 넘어서자, 중국자본을 끌어다 사업을 지속한다.
여기에 카카오게임즈를 통해 게임플랫폼 사업모델로 카카오톡 메신저를 연동시키며
수익구조를 발생시킨다.
성공적이었다.
카카오 선물하기로 발전한 카카오페이도 마찬가지로 성공적
강력한 플랫폼을 가지니,
연계되는 사업은 무엇이든 할수 있었다.
카카오페이, 뱅크, 게임, 택시....그리고 이제는 보험도 하고,
안하는게 있다는게 이상할 정도가 되어 가고 있다.
나같은 범인들은,
뉴스정도로만 접할수 있을 뿐이지,
엄두도 내지 못할 엄청난 일들을 해내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서,
직접 관련 사업을 할수 없다면,
유망한 회사의 주식을 사서 동행이라도 해야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한 순간에 벼락거지로 전락해 버릴지 모를일이다.
https://newsis.com/view/?id=NISX20210730_0001532149&cID=13001&pID=13000
https://namu.wiki/w/%EA%B9%80%EB%B2%94%EC%88%98(%EA%B8%B0%EC%97%85%EC%9D%B8)
1990년대 말 PC방과 온라인 게임 열풍이 불자, 삼성SDS에 재직 중이던 1998년 6월 김범수는 한양대학교 앞에 '미션넘버원'이라는 대형 PC방을 부업으로 열었다. 법인명은 미션엔터테인먼트. 전국 최대 규모의 PC방인데다 그는 한자리에서 모든 컴퓨터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개업 6개월 만에 5천만원을 벌만큼 PC방은 승승장구했고 PC방 운영을 아내에게 맡기고는 1998년 9월 삼성SDS를 나왔다. 김 의장은 그해 연말인 1998년 11월 강남구 삼성동에 한게임을 창업했다.
김범수는 2000년 한게임을 삼성SDS 동기 이해진 사장의 네이버와 합병시키고 NHN 공동대표가 된다. 2004년 NHN 단독대표를 거친 이후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대표를 맡는다. 그러다 2007년 8월 대표직을 던진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해진과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 많은 돈은 받고 네이버를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초창기 인터넷 기업이 큰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네이버는 검색 엔진과 서버에 많은 투자가 필요했고, 그 투자금은 한게임에서 번 돈으로 메꿨다.)
그 후, 김범수는 다 털고 가족이 있던 미국으로 떠났다. 자녀들과 놀아주고 학교 데려다주면서 1년을 보냈다. 그는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다시 귀국해 음악에 빠지고, 책에 빠졌다.
김범수는 너무 외로워서 "1년만 휴학하고 한국서 놀자"고 미국에 있던 가족들을 설득했다. 당시에 큰 애는 고1, 둘째는 중3이었는데 '나도 재수했는데, 애들이 1년 정도 늦게 대학가면 뭐 어떤가' 싶어서 식구끼리 여행다니고, 당구치고, PC방에 다녔다고 한다. 더 무서운 건 이때 애들한테 아무 것도 못하게 하고 강제로 놀게만 했다고 한다.(...) 식구 중에 딸이 게임을 별로 못했는데, 아들과 게임 고수인 아내의 지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했다고 한다. 그렇게 넷이서 게임을 하다보면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PC방 주인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면 그게 정말 행복했다고...
그렇게 가족과 놀기를 3년, iPhone이 출시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가족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카카오톡이 탄생한다. 본인이 미국에 있을 때 마침 아이폰이 출시되는 것을 보며 PC에서 모바일 시대로 옮겨갈 것을 짐작, 한창 준비하던 프로젝트를 무산시키고 위와 같은 서비스를 출시했다. 카카오톡은 PC메신저 일색인 시장에서 '모바일 메신저'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무료 서비스와 그룹채팅의 강점을 내세운 카카오톡은 출시 1년 만에 1,000만명의 이용자를 모았다. 당시 카카오톡이 급속도로 성장했던 이유는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동통신사의 문자 메신저는 글자수 제한이 있었던 건 둘째 치고 별도의 통신비를 엄청 지불했어야 했다. 카카오톡은 인터넷에 연결만 되면 글자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었고, 후에 출시한 이모티콘과 부가 기능들이 유명세에 불을 붙여 흥행을 이끌었다. 현재는 네이버의 라인과 페이스북의 메신저 등 만만치 않은 경쟁사들이 있지만 2014년까지도 경쟁사들의 성장이 더딜 때라서 김범수 의장의 시장 선점이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당시를 보면 매우 과감하고 급진적인 투자이고 사업이었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문자 메신저 또한 통신망 투자를 한 상태에서 수익원이 되는 것은 당연한데, 카카오톡은 그것을 무료로 해주었던 거. 사용자 입장에서는 문자 메신저가 공짜여서 좋기는 한데,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카오톡 입장에서는 매달 10억원 이상의 서버 투자 비용이 계속 들어갔다. 네이버 합병으로 벌어들인 투자금이 없었다면, 시작조차 하기 어려운 사업이었다.
김범수는 카카오톡 초창기에 단 한푼의 수익도 없이 서버 투자로 매달 10억원 이상씩 돈만 쓰고 있었다. 다만 SDS와 한게임등을 통해 인터넷 사업을 영위해온 그간 경험에서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돈이 된다는 신념만을 믿고 지속적으로 투자금을 쏟아부었다. 이후 김범수 개인 돈 마저 고갈되고, 카카오톡 사용자들은 메신저 렉 걸린다고 아우성이 들리는 상황이 되고, 결국 중국에서 투자금을 지원받아 지속적으로 투자를 넓힌다. [6] 다만 김범수의 막대한 돈, 텐센트의 투자금 계속 비용이 발생될 무렵, 카카오톡이 전세계에서 최초로 메신저로 수익이 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어냈는데, 카카오 게임을 통해서 메신저 사업에서 수익 창출 모델을 최초로 제시하였다. 이후로는 선물하기 기능 등등. 이후 김범수의 전략대로 인터넷에서는 사람이 모이면 돈이 된다는 이야기는 정설로 법칙처럼 되어버렸다. 카카오톡의 성공 모델을 보고, 네이버 이해진은 일본과 그 변방 국가(태국, 인도네시아 등)에 라인을 기반으로한 메신저를 재빨리 론칭했고, 중국은 QQ를, 전세계에서 가장 발빠른 이스라엘 기업도 메신저 회사를 만들었으나, 페이스북이 빠르게 인수한다.
이후 2014년 다음과 합병한다. 한때 그의 주 파트너가 경쟁사였던 네이버였음을 감안하면 합병이긴 해도 경쟁사와 인연을 맺은 것이 시대의 아이러니이다. 카카오는 처음에는 무료 서비스라 게임 업체와의 연동에 주력해 수익을 냈지만, 이후 준비했던 유료 서비스들과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 은행 사업이 대대적으로 성과를 내면서 2019년, 자산총액 10조 이상의 대기업 기준을 만족하며 9년 만에 대기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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