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연말, 연초 주로 해외에서 보낸다. 금융중심지인 뉴욕에서 보낼 때가 많다. 인사이트펀드 전후로 글로벌 전략에 치중하면서 해외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그중에서도 연말연시에는 최측근과 뉴욕 호텔에서 글로벌 전략을 논의하는 게 일상이 됐다.
그 자리에는 미래에셋의 '글로벌 통'으로 불리는 김미섭 글로벌사업담당 사장이 대부분 같이했다. 그는 올해 3월 미래에셋증권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사내이사가 주는 무게감은 남다르다.
미래에셋금융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미래에셋증권의 사내이사는 재선임된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회장, 이만열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사장, 이번에 신규 선임된 김미섭 미래에셋증권 글로벌 사업담당 사장 등 3명이다.
김 사장은 정통 미래에셋맨이다. 미래에셋 태동부터 회사의 밑그림을 그려온 인물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래에셋자산운용 기획실, 미래에셋캐피탈 기획실, 미래에셋투신운용 기획실 등 주요 계열사 기획을 거쳤다.
이후 2005년부터 2013년까지 미래에셋자산운용 해외법인 대표를 맡았다. 이듬해부터는 미래에셋자산운용 글로벌사업부문 대표 부사장을 거쳤다. 미래에셋의 해외 진출이라는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 결실을 보는 모든 과정에 앞장섰다. 이후 공로를 인정받아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이 됐고, 지난 2021년 자산운용에서 증권으로 옮겨 글로벌 사업담당 사장을 맡고 있다.
김 사장의 25년 미래에셋 생활은 초창기 기획을 빼고는 거의 그룹의 해외 진출과 일치한다. 2003년 국내 최초 해외 운용법인인 미래에셋자산운용(홍콩) 설립을 시작으로, 올해 미래에셋은 해외 진출 20년을 맞았다.
미래에셋의 글로벌시장 도전 전략은 2011년부터 변화가 생겼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캐나다 선두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사인 호라이즌 ETFs를 인수한 것이다. 8년 동안 자체자금을 투입한 현지법인 설립이라는 오가닉 그로스(Organic Growth)였다면 2011년부터는 인수합병(M&A)을 통한 인오가닉 그로스(Inorganic Growth)로 선회했다.
해외 진출, 해외 M&A의 진수라는 평가를 받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국 ETF 운용사 글로벌 엑스 인수는 2018년 7월에 이뤄진다. 지금처럼 ETF 시장이 커지기 전, ETF만 하는 작은 운용사를 5천억원에 베팅한 것은 리스크 자체였다. '속아서 비싸게 샀다, 실패할 것이다'는 주변의 평가가 있었지만, 3년 여만인 2021년 10월 글로벌 엑스의 운용자산은 400억 달러를 넘어선다. 그즈음 한 금융그룹 전략회의에서 글로벌 엑스는 해외 자회사 인수 성공사례로 소개됐다. "왜 글로벌 엑스 같은 매물을 찾지 못하냐"는 말도 오갔다.
2008년 미래에셋은 미국에 증권과 운용 현지법인을 설립해 월가에 도전했지만 쉽지 않았다. 글로벌 엑스는 월가에 도전하는 미래에셋의 이정표가 됐다.
지난해에는 호주 운용사 ETF 시큐리티스를 인수했다. 이후 빠르게 사명도 글로벌 엑스 호주로 바꾸는 등 해외 ETF는 글로벌 엑스로 DNA 통합 작업을 했다. 굵직한 이 M&A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국내 금융회사가 해외에서 번 돈을 해외에 재투자한 첫 M&A 사례였기 때문이다. 실제 인수대금은 홍콩과 미국에서 마련됐다.
최근 김미섭 사장은 해외 진출 20년 중 15년 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회고했다.
"초반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가시적 성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15년 동안의 시행착오, 장기적인 헌신을 바탕으로 지금은 우리도 놀랄 정도의 성과가 각 영역에서 나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래에셋의 해외 사업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은 2002년부터였다. 잘 모르는 곳에 처음부터 진출하지 않고, 자체 자본금을 가지고 오가닉 셋업(Organic Setup)으로 접근했다. 관심 가져야 할 국가에 대한 정확한 이해, 어떤 비즈니스를 집중해서 국가별로 시행해야 하는지 자체적으로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래서 첫 출발이 홍콩이었다. 한국을 기반으로 둔 회사가 유럽이나 미국에 바로 진출하면 바로 부담이 된다. 중국 본토의 경우 외국계 직접 진출에 대한 제한이 많아 아시아경제 허브인 홍콩에 진출했다. 홍콩은 당시 큰 금융투자회사는 다 관심을 가지던 곳이었다. 미래에셋의 선택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다들 치고 빠질 때 뚝심 있게 견뎌냈다는 게 다르다.
이를 바탕으로 2011년 현지 회사를 사는 M&A에 이른다.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할 특정 사업 분야의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인수를 통해 단시간에 확장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 부분이 최근 5년 동안 엄청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운용사와 증권사가 주축인 미래에셋은 선 운용사 인수 전략을 취했다. 소규모 자본과 상품 개발, 운용 능력을 갖춘 운용사를 중심으로 해외 진출을 시작하고,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다른 금융계열사들이 진출하는 방식으로 해외 사업을 확장해갔다. 지금도 이 틀이 해외 진출의 큰 의사결정이다. 흔들리지 않고 잉여자금의 대부분을 투자해 해외 진출한 게 오랜 해외 사업을 견뎌내는 시드머니가 됐다.
성과가 있기까지 견디는 힘은 중요하다. 대표적인 게 인도다. 브릭스 열풍을 타고 미국 등 금융기관들이 미래에셋과 비슷한 시기에 인도에 진출했다. 미국과 유럽 기관은 좀 더 편한 선택으로 합작을 택했지만, 미래에셋은 100% 오너십을 가지고 진출했다. 금융위기 이후 변동성이 커질 때 미국과 유럽 회사는 자본금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편하게 투자금을 회수했지만 미래에셋은 버텼다. 이는 인도 시장을 보는 시각이 달랐음을 보여주는 방증이 됐다. 결국 트렉레코드를 쌓고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얻은 미래에셋은 인도 진출 후발주자지만 지금은 내로라하는 금융사로 자리매김했다.
금융위기 이후 미래에셋은 해외시장 ETF에 집중했다. 앞으로도 해외 ETF를 중심으로 한 패시브 비즈니스와 ETF 생태계 발판으로 한 브로커리지, 트레이딩 비즈니스가 미래에셋의 주력 포인트다. 벤처캐피탈(VC) 같이 투자전문회사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다.
최근 금융당국은 국내 금융회사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나섰다. 글로벌 금융시장 10위권 국가인 대한민국이 금융허브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인오가닉, 오가닉을 총망라한 해외 시장에서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미래에셋은 해외 진출에 있어 국내 금융회사들의 확실한 본보기다. 얄밉다고들 하지만 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팩트다.
시행착오와 새로운 시도는 함께 간다. 미래에셋은 20년의 해외 비즈니스에서 15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었다. 최근 5년, 조금씩 나타나는 결실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배고픔을 외치는 게 미래에셋이다.
그런 미래에셋을 금융당국은 높게 평가한다. 오너 기업이었기에 가능했던 전략적 판단이지만, 시행착오와 이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은 충분히 인정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이제 기다림의 시간을 금융당국이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금융당국도, 투자자들도, 시장도 제2의 미래에셋이 간절하다. (투자금융부장)
sykwa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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