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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도'덕경

by 자유인 2022.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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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마다 

 

도, 도, 하는데 도대체 무슨 '도'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가만히 보니깐,

사람들이 말하는 '도'가 저마다 다르고,

내가 알고 있는 '도'와도 다른 것이 분명하다.

 

왜 그런가 봤더니, 사람들이 '도'를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도가도 비상도

(道可道 非常道)

 

도덕경은 총 5천자로 이루어진 책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나오는 문구 입니다. 

 

그런데 왜 이 문구가 가장 먼저 나왔을까요??

 

좋은 생각은, 대개 좋은 질문에서 나옵니다. 

 

그럼, 노자는 왜 <도덕경>을 썼을까요?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도덕경 책을 읽으면서,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좋은 말인것 같긴한데, 도무지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도덕경은 어려운 책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어려운 책일까요?

 

한자로 되어 있어서? 

2500년전에 쓰여진 글이라서??

 

사실 저는 도덕경이 어렵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것'과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실체고 하나는 인식인데,

우리는 이 둘을 항상 혼동하며 살아갑니다. 

 

회사에서 처음하는 일을 하라고하면,

지레 겁부터 내고,

거부하려는 심리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해보면 별거 아닌데,

어려울꺼라 생각하는, 인식의 문제입니다.

 

또는 하던일만 하려고 하는 관성에 젖어서......

그런 부분도 분명 있겠지요.

 

이번에는, 우리가 영어를 전혀 모른다고 가정해 볼까요??

 

어떤 물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물체를 직접 볼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과'라고 했어요.

 

그런데, 누가 Apple 이라고 하면 영어를 모르는 우리가, 알아들을수 있을까요??

아니겠지요.

 

우리가 너무 영어를 잘 안다고요?? 그럼

 

ಆಪಲ್

 

이건 뭘까요?? 이것도 사과입니다.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지게 되고, 알아들을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사과'라는 것은 실체는 존재하죠.

 

가려졌던 물체를 직접 보게되는 순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하지만, 관념적인 부분은 조금 다르죠.

직접 보거나 만질수가 없으니, 더욱 복잡해 집니다.

 

그리고 사과를 보고나서 드는 생각도 서로 다릅니다. 

 

김춘수 시인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냥 몸짓이었지만

이름을 불러주니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는 '꽃'이라는 시를 지었죠.

 

우리가 꽃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으면,

꽃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죠.

 

그래서인지 노자는, 

 

무명천지이시, 우명만물지모라고 했습니다.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세상 모든 만물은,

이름에서부터 그 존재가 시작된다고요.

 

당연히, 이름이 없어도 세상엔 무언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자가 주목한 것은,

 

'이 세상 만물의 이름은 도대체 누가, 왜, 어떻게 붙인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붙여놓은 이름을 외우느라고 정신없었겠지만,

사물에 붙여진 이름은 그냥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각기 그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이름이 없으면, 우리는 제대로 인식조차 할수 없습니다.

 

인식한다고해도, '이것', '저것' 이라고 밖에 할수 없겠죠.

 

이름이 붙여지고 나서야,  

사물이, 그 존재의 의미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선' 공부를 하면,

 

처음에, 이름 붙이기 훈련을 합니다. 

 

고정관념을 없애기 위해서,

사물에 새로운 이름 붙이기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물체에 완전히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당신앞에 연필이 있습니다. 

연필 말고, 다른 이름을 새롭게 붙여 보시겠습니까?

 

아니면, 

스마트폰이, 핸드폰이 있습니다.

뭐라고 다른 이름을 붙이실수 있으실까요??

 

우리는 어떤 관념속에서 세상을 살아갑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볼까요??

 

언어가 없으면 생각조차 할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생각도 하는 것입니다. 

 

언어를 이용하지 않고, 생각이라는 것을, 

사유라는 것을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가능할까요??

 

사용하는 언어가 한가지이면, 생각의 폭도 그만큼 줄어들게 되겠지요.

 

하지만, 이 언어라는 것을 가지고

내 마음이라는 것을 온전히 100% 전달할수가 있을까요?

 

'진리'라는 것을 설파할수 있을까요??

 

누군가 갑자기 나와서,

 

이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라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이 사기꾼이 아닌가 의심해 봐야합니다. 

 

말로 표현하는 순간, 그것은 '도'가 아니게 되어 버리는 것이죠.

 

이것은, 

 

시대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르고,

지역에 따라 다르고,

기준에 따라서 또 달라집니다. 

 

사람에 따라서도 다른 것입니다. 

 

언제든지 변화무쌍하게 변합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는 것을,

유한한 것으로 무한함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되어 버리는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장자 책을 보면, 뭔가 쉬우면서도 난해합니다. 

여러가지 우화와 비유를 써가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이것인것 같으면서도, 저것인것 같기도 합니다 

분명 주장하는 바가 명확히 있지만, 

이거다. 라고 명확하게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도가도 비상도 6글자를 가지고,

너무 멀리까지 온게 아닌가 싶습니다. 

 

평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게,

언제든지 틀릴수가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시면서, 유연함을 항상 유지 하셔야 합니다. 

 

이름이 지어지면서,

사물이 그 존재의 이유를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왜 여기 와 있을까요??

이 일을 지금 왜 하고 있는 걸까요??

 

내 존재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번씩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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